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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로서 존엄성을 갖고 헌신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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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의과대
  • 작성일 : 2023-05-31
  • 조회 : 62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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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한국을 찾은 의학과 장익경 ES(Eminent Scholar) 교수를 만났다. 미국 하버드 의과대학 석좌교수인 장 교수는 2020년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받은 하버드 체어 임명장과 청진기를 의과대학에 전했고, 의과대학과 강동경희대병원에서 특강을 진행했다. 자신의 사례를 보고 후배들이 ‘본인들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장익경 의학과 ES 교수(미국 하버드 의과대학 석좌교수) 인터뷰
2020년 받은 하버드 체어(Harvard Chair) 임명장과 청진기 의과대학에 전해
“자부심 느끼고 세계적 학자가 될 수 있다는 영감 받길”

미국 하버드 의과대학 석좌교수로 일하고 있는 의학과 장익경 ES(Eminent Scholar) 교수가 지난 5월 한국을 찾았다. 팬데믹이라는 큰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전환하는 천재일우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그는 모교의 후배들이 자신감을 갖고 도전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2020년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받은 하버드 체어(Harvard Chair, Allan and Gill Gray Professor of Medicine) 임명장과 청진기를 의과대학에 건냈다. 하버드 체어는 하버드 의과대학의 12,000명 패컬티 중 3%만 받은 가장 높은 수준의 명예로 장 교수의 우수성을 보여준다.

장 교수는 의과대학과 강동경희대병원에서 후배들을 만나, 본인의 인생과 연구자로서의 마음가짐도 풀어냈다. 강동경희대병원 차후영홀에서 개최된 특강은 질의응답식으로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장 교수에게 미국에 간 이유나 미국에서의 생활 등과 심장내과 분야의 치료법을 물었고, 장 교수도 세심하게 답변했다. 특강 이후 만난 장 교수는 질문들에 명확하게 답변했다. 의사이자 과학자의 자부심과 자신감이 엿보였다. 장 교수에게 임명장과 청진기를 통해 경희 구성원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무엇인지 들었다. <편집자 주>

Q. 경희대에서 수학한 후 미국 하버드대 의과대학에서 36년째 일하고 있다. 특강에서도 이 과정에 관한 질문이 많았다. 미국으로 향한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다짐으로 미국으로 향했나. 그리고 임명장과 청진기를 기부한 이유는 무엇인가.
어린 시절부터 집안에 의사가 많아서, 당연히 의사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학부 본과 3학년 정도로 기억한다. 당시에 선배 한 분이 미국 대학의 중국계 조교수님을 초청해 특강을 듣게 됐다. 동양인으로 미국에서 교수가 된 과정을 들었었다. 그분께서 ‘이왕이면 명문 대학에서 교수가 돼라’는 이야기도 했는데, 그 이야기도 기억에 남았다. 하버드 의과대학 부속 메사추세츠 제너럴병원(MGH)은 제가 의과대학 학창 시절부터 꿈에 그린 세계 최고의 병원이다.

미국에 살기 시작했을 때 아내와 함께 공유했던 생각이 하나 있다. ‘미국에서 주류에 속하는 사람이 되겠다’라는 다짐이었다. 주류에서도 선봉에 서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 아내와 주류가 되지 못하면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다짐했었다. 미국에 온 만큼 미국 사회에서 인정받으려 했다. 현재 보는 환자 중 한인 환자는 1%도 안 된다. 요즘 환자들은 의사를 찾기 전에 의사를 검색하고 온다. 미국 사회에서 찾는 의사가 됐다.

임명장과 청진기를 드린 것은 ‘기부’라고 거창하게 표현할 일은 아니다.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자신감을 갖고 도전하길 바라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학생들이 한국에서 공부하고 하버드대에 가고, 이후에 정교수, 석좌교수가 된 저와 같은 사례를 기억하며, ‘본인도 저렇게 될 수 있다’라는 영감을 받았으면 좋겠다.

장익경 교수가 의과대학에 기부한 하버드 체어 임명장과 청진기 사진

즐거움이 꾸준한 연구의 원동력, 팬데믹은 인공지능 등 새 분야 연구 기회로 삼아
Q. 2018년 학교와의 인터뷰에서 ‘향후에도 임상과 연구에 모두 집중할 것’이라는 목표를 밝혔었다. 당시의 다짐은 아직도 유효한지 궁금하다. 또한 ‘협업’을 연구의 원동력으로 밝혔다. 공동연구와 융합연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 이런 생각을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당연하다. 임상과 연구를 모두 하는 의사를 ‘의사 과학자(Physician Scientist)’라고 한다. 두 분야를 접목하는 일이다. 환자를 돌보며 좀 더 나은 치료법이나 진단법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새로운 접근법을 기초 과학 단계에서 연구해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지 판단한다. 임상과 연구를 넘나들 수 있는 공간은 대학이 유일하다. 이는 대학에 있는 의사들이 꼭 해야 하는 일이고, 대학의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의사는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고, 환자의 상태를 조금 더 나아지게 만들어야 한다. 제가 연구에 사용한 ‘광 간섭 단층촬영(Optical Coherence Tomography, OCT)’이란 것이 있다. 이를 심장학 분야에 어떻게 쓸지 고민했다. OCT는 MIT에서 30년 전에 개발했다. 임상과는 크게 연관이 없었는데, 새로운 진단법으로 적용해 치료법으로도 활용할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을 25년간 계속했다.

팬데믹을 겪으면서 ‘큰 위기지만, 어쩌면 기회일 수 있다’라고 생각했다. 팬데믹이 시작되던 시점부터 인공지능과 마이크로바이옴, 프로테오믹스를 심장내과 분야에 적용할 방안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연구범위를 넓혀가는 중이다.

Q. 임상과 연구에 대한 열정이 보인다. 계속되는 열정의 원동력이 궁금하다.
100% 내부적 원동력이다. 외부적 요인은 전혀 없다고 확언할 수 있다. 압박받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이나 미국의 시스템은 비슷하다. 저는 13년 전에 정교수가 됐고, 3년 전에 석좌교수가 됐다. 솔직히 지금 제 위치에서는 연구 논문을 하나 더 내고 덜 내도 다른 것이 없다. 그렇지만 연구가 좋다. 지금까지의 논문 수를 보면 최근 3년간 생산성이 가장 높았다. 개인적으로 작년에 너무 재밌는 연구들이 많았다. 관상동맥 플라크 침식과 관련된 임상, 분자 기전, 진단이나 치료 관련 연구를 수행했다. 관상동맥 죽상경화증을 판단할 때 OCT를 활용하는 방법도 연구했다. 굉장히 흥분되는 순간들이었다(웃음). 의대생은 의사가 되고 나면, 개업의가 되거나 교수가 된다. 두 분야의 차이는 연구와 교육이다. 교수로서 이를 제대로 해야만 한다고 생각해왔다.

Q. 2022년에 ‘미국심장학회 저명 과학자상’을 수상했다. 심장학 분야에 뛰어난 공헌을 한 과학자에게 수여하는 가장 권위 있는 상 중 하나이다. 당시 『미국심장학회지(JACC)』의 편집장 발렌틴 푸스터 박사는 장익경 교수를 ‘OCT의 아버지’라고 칭한 바 있다. 수상 이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동료 교수들이 한 말이 생각난다. “이제 너(장 교수)는 우리와 수준이 다른 그룹에 속한 사람이야”라고 했다. 하지만 삶이 달라지진 않았다.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하고 있던 연구의 깊이를 더하고 있고, 동시에 연구범위도 넓히고 있다. 지금도 4시 반에 일어나 6시부터 근무하고 있다.

지난 12년간 집중한 분야가 있다. 심장마비 환자의 50% 정도는 ‘언더라인 메커니즘(질병의 상태나 근본적인 원인)’이 다르다. 그것을 진단할 수 있는 연구를 수행하며 논문을 출간했다. 그다음에는 치료법도 다룰 수 있었다. 스텐트를 넣지 않고 치료하는 방식이 가능할 수 있다는 가설을 냈고, 임상적으로 증명했다. 이게 되면 향후 5년 이상은 여기에 집중해야 할 것 같다.

장익경 교수는 팬데믹을 인공지능과 마이크로바이옴, 프로테오믹스 등을 심장내과 분야에 적용할 방법을 연구할 기회로 삼았다.

경희 구성원, 꿈을 떠올리며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가길
Q. 연구자이자 의사가 아닌 ‘인간 장익경’의 목표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그 목표를 이뤘는가.

‘매일 최선을 다한다’라는 것이 생활신조다. 스스로에게도 묻고, 아이들에게도 묻는다. 매일 최선을 다했는지 1에서 10을 척도로 평가해본다. 매일 열심히 연구하고 일하며 1년, 10년, 20년이 지나면 다른 사람과 차이가 난다고 생각한다. 36년 전 MGH에 처음 왔을 때부터 매일 노력을 쌓다가 돌아보니 지금의 위치가 됐다. 처음부터 ‘하버드의 정교수가 되자’라는 식으로 생각하진 않았다. 굳이 평가해보면 목표보다도 더 이룬 거다.

지금의 성과들은 모두 아내가 이루게 도왔다. 아내도 의사인데, 본인의 경력을 포기하고 저를 지원해줬다. 함께 공부하다 저녁 늦게 귀가하는 날들을 보냈는데, 아이들에게 소홀했다. 딸이 심한 감기에 걸려 아내가 학업을 늦추기로 했었다. 아내가 “당신이 먼저 기차를 타고 가면, 나는 다음 기차로 따라가겠다”라고 말했었는데, 결국 아내의 기차는 오지 않았다.

하버드로 갈 수 있는 용기를 준 것도 아내다. 처음 채용 권유를 받았을 때 굉장히 기뻤지만, 걱정되는 마음도 컸다. 하버드에서 생존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아내에게 이야기했더니 “당연히 할 수 있다”라고 응원하며 “다른 사람들은 혼자 뛰는 길이지만, 당신은 나와 함께 뛴다”라고 말해주더라. 그 순간이 인생의 전환기(Turning point)였다.

Q. 경희 구성원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인가.
교수로서의 자신감에 관한 말씀을 드리고 싶다. 경희의 교수로서 ‘존엄성(Dignity)’을 갖고 ‘헌신(Devotion)’하라고 말하고 싶다. 대학 교수가 된 이유를 다시 떠올려보면 좋을 것 같다. 교수는 단순하게 논문을 쓰고 읽는 것이 다가 아니다. 끝없이 노력해야 한다. 의사로서는 환자를 치료하고, 연구하며 제자들을 가르쳐야 한다.

장인어른이 학자로서 제 인생에 조언을 많이 해주셨다. 부산대학교 의과대학의 학장을 지내셨고, 한국 의학계의 전설 같은 분이다. 문효중 박사님이 제 장인어른이시다. 의사로서의 여정에 본받을 점이 많은 분이었다. 결혼 후에는 매주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정도 통화를 했었다. 조교수 때였는데, 논문이 잘 안 나올 때는 연구가 잘 되는지 묻곤 하셨다. 장인어른의 말씀에 자극받아 연구에 더 집중한 것 같다.

장인어른은 제가 정교수가 되기 3개월 전에 돌아가셨다. 지금 장인어른이 살아 계시면 어떤 말씀을 주실까 떠올려보곤 한다. 아마도 기대한 것보다도 잘 됐다는 칭찬보다는 ‘이제는 노벨상을 목표로 더 열심히 연구하라’고 말씀하실 것 같다. 경희 구성원들도 각자의 꿈을 떠올리며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아가면 좋겠다.

글 정민재 ddubi17@khu.ac.kr
사진 정병성 pr@khu.ac.kr

ⓒ 경희대학교 커뮤니케이션센터 communication@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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