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과 2학년입니다.

바로 방금, 본1들이 했던 것들을 마치고 올라온 입장으로서
제가 보는 본1들의 커리큘럼, 정말 이해하기 힘든게 사실입니다.

우리는 2년한것을 1년에 끝내는 살인적인 학습량은 둘째로 미뤄
놓고라도, 해부학, 조직학, 생리학, 생화학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미생물학, 약리학, 병리학을 배우고 있더군요.
후배가 약리학 공부를 하면서 머리를 싸쥐고 도저히 알 수가 없다고,
미생물학 공부를 하면서 대체 이게 뭐냐고 저에게 물을때,
저는 한마디밖에 해줄수가 없더군요.

`이거 생화학에 나오는건데...`

병리학 실습 슬라이드를 보면서 느끼는것이
정말정말 어렵다는 것입니다. 정상조직이 어떻게 생겼는지
대강 아는 제가 병리 조직을 봐도 하나도 모르는데,
(사실 이제 한학기 구르고 나니깐 무슨 병인지는 몰라도
대강 무언가 잘못되었다는게 느껴지긴 합니다;;)
과연 정상조직도 다 모르고 병이 생긴 조직을 보는 후배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군요.

미생물 모 교수님은 그런 말씀을 하셨다는군요.
`원래 윗학년은 총 90시간의 수업시간을 주는데, 올해는
그게 30시간대로 줄어서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대체 미생물학...우리가 주마다 서너시간씩 1년을 듣던과목을,
배우는 양은 똑같은데 3분의 1의 시간만 주고 배우라 하면,
안그래도 빠른 진도, 수업때 후배들이 제대로 이해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타의대 다니는 친구들과 비교해 봤을때
우리 경희의대의 기초과목 커리큘럼 하나는 정말 깔끔하고
효율적으로 짜여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임상은 안들어봤으니 모르겠지만 기초가 이렇게 좋다면
임상도 좋을것이라 느끼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구요.
그런데 지금 커리큘럼을 보면 완전 모든 기초과목이 뒤섞인 느낌입니다.
물론 배우는 입장에서 커리큘럼에 대해 무어라 말하는것은
도리에 맞지 않을수도 있지만, 단순히 제가 배웠던 것과 후배들이
배우고 있는 것을 비교해 봤을때 느끼는 점입니다.


우리 후배들은 차치하고서, 유급당한 우리 동기들.
유급당한 친구 한명은 한두과목만 들으면 진급을 할 수 있다더군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우리는 지금 병리학 각론을 듣고 있는데,
그친구는 병리학 수업을 아예 안듣고 진급이 가능하더군요.
그러면 본2올라가 임상에 들어갔을때, 병리학 각론에 대한 지식은
전무한 상태로 임상강의를 듣게 됩니다.
이런 커리큘럼 차이에 의한 문제는
비단 올해뿐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발생하겠지요.

그리고, 저희학번은 본3 2학기~ 본4 1학기까지 임상실습을 도는것으로
아는데, 본1들은 본3동안 임상실습을 돌더군요. 그렇다면, 저희학번이
본4 1학기 실습을 돌때는 03들도 같이 실습을 돌게 됩니다.
과연 경희의료원이 260명이 넘는 학생들이 임상실습을 할 만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습니까?

아랫학번들은 본4 기간동안 `서브인턴` 이라는 것을 합니다.
그런데 이 서브인턴제라는게 제가 알기로는 단계별 국시제로 바뀌면서
도입되는 제도라고 알고 있으며 그 제도가 언제 도입되어 실행될지는
아직 변수가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만약 03학번은 계속 학년이
올라갔는데, 서브인턴제의 시행이 미뤄지거나, 취소가 된다고 하면
어떤 대비책이 있습니까?

궁금한 것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학생은 교수님들이 저희를 이끄는 대로 믿고 따라가야 합니다.
하지만 궁금한것이 너무나 많은데, 아무도 저희에게 뭔가 장구한
청사진을 제시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경희의대는 아직도 바꿀게 너무나 많아 보입니다.
하드웨어 측면으로는 입학한지 4년째, 이제야 뭔가가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지만...
본과 올라와서 느낀 시스템의 문제는 훨씬 더 심각해 보입니다.

저희는 불안합니다. 저희가 불안감을 느끼고 있을 정도면,
지금 혼란을 몸으로 겪고 있는 본1들은 어떨지...
참 안타깝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