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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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양심 있는 미
- 작성일 : 2001-08-10
- 조회 : 51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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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의대 홈페이지에서 퍼온 글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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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대학교 명예총장 이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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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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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비행기 여행 중이던 미국의 어느 의사는 “승객 한 사람이 의식을 잃었으니 의사가 있으면 도움을 달라”는 기내방송을 듣는다. 이 의사는 내과 전문의가 아니었으나 자기가 아는 의학지식과 기법을 동원해서 환자를 치료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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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절했던 승객은 비행기가 착륙하자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결국 생명을 잃었다. 그런데 차후에 이 사망한 환자의 가족은 기내에서 응급조치를 취한 의사의 조치가 잘못되어서 환자가 사망했다는 이유로 의사를 고소했다. 피소된 의사는 내과 전문의도 아닌데다가 그가 취한 조치가 적절치 않았다는 것이 밝혀져 결국 법정에서 패소했고 엄청난 보상금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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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당시 미국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고, 응급상황에 맞닥뜨리면 무조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하며 개입하던 의사들의 관습에 변화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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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치료적 계약이 없는 상황에서도 의사는 응급상황에 놓인 환자에게 자진해서 치료적 개입을 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의사의 윤리 의식에 의문이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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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입장은 응급상황이라 할지라도 의사가 치료를 시작하면 의사·환자 사이에 치료계약이 성립된 것으로 보고 과오가 있을 경우 그 책임을 의사에게 부가시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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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의료과오가 생길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진찰 도구나 약도 없는 상황에서 환자를 위해 자진해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인데, 그 결과에 관한 책임을 지기 싫으면 개입하지 말라는 법의 입장은 의사들을 당혹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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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의사단체에서는 자기 환자가 아닌 경우 아무리 응급 상황이라도 개입하지 말고 방관해도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내 기억에도 절대로 의사라는 신분을 아무 데서나 밝히지 말고 불의의 사고를 목격해도 그냥 지나가라는 충고를 전해들었던 것이 남아 있다. 수련의 시절에 선배 의사에게서 들은 충고라 상당히 중요하게 받아들인 나는 오늘날까지도 이 원칙을 지키고 산다. 물론 정신과 의사이기 때문에 크게 쓸모가 없어 사양하는 면도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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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대부분의 의사들은 비록 잘못된 진단이나 치료의 가능성이 있어도 인도주의적인 양심에서 차를 타고 가다가 도로에서 자동차 사고가 일어나면 차를 멈추고 뛰어들어 응급 조치를 하고 CPR까지 하여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 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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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런 도의적인 지원을 제공한 의사들이 치료비를 청구하는 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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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의사들은 그 천직과 직결된 양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의사는 생명을 살리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윤리 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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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의사는 윤리 의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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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미국에서 있었던 이야기이다. 전문의가 되어 어느 종합병원의 스탭으로 그 병원에 출근한 첫날, 병원소개와 함께 오리엔테이션이 있었다. 그 프로그램 가운데에는 병원 자문변호사의 강의도 있었는데, 그 변호사는 의사의 생활이 무척 바쁘니까 일일이 차트에 기록할 시간이 없겠지만 꼭 한 가지만은 기억하고 기록하라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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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환자에게 어떤 조치를 하거나 면담을 한 후 기록할 때는 그 환자가 후에 나를 고소한다는 상상을 하면서 그때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내용을 적어 달라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환자를 진찰하고 약 처방을 한 후에는 “내가 처방한 약의 효과와 부작용을 설명했고 환자는 이를 알아들었다”라고 꼭 쓰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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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환자의 경과가 어떻고 어떤 이유로 무슨 진단을 내렸다는 등의 자세한 치료과정은 될 수 있으면 쓰지 말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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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변호사는 웃으면서 “여러분이 나를 나쁜 사람으로 보실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엄청난 의료 소송에서 의사 여러분을 방어해 온 경험 있는 변호사로서, 여러분께 이런 식의 ‘방어기록(defensive charting)’을 하라고 충고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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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충고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나의 치료과정이나 내용은 상세히 기록하는 버릇을 갖고 있다. 그 이유는 전공의 시절 나의 스승이 “의무기록은 나의 의학적 결정과정을 기술하는 의사만의 문학작품이고, 동시에 같은 환자를 다른 의사가 인계 받아 치료할 때 그 의사가 나의 치료 내용을 최대한으로 이해하고 환자를 위해 그 정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때문에 사적인 정보는 제거하되 의학적 사실은 상세히 기록해야 한다”고 했던 충고를 귀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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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내가 기록한 내용이 소송에서 나에게 불리한 자료가 될 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차팅을 잘 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소신이고 의무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소신은 법하고는 상관없이, 나의 양심에 철저한 기록이 환자를 위하는 길이라고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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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혀가도 할 수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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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이야기는 의약분업이 막 시작되어 의료계가 큰 혼란을 치르고 있었던 때의 일이다. 어느 모임에서 한 분이 예정보다 한 시간 이상 늦게 도착을 했는데, 그는 처방전을 받은 환자들이 어느 약국에 가야 제대로 약을 탈 수 있을 지를 일일이 알려주
:느라고 늦은 것이었다. 그는 미리 병원 근처 약국에 연락하여 약품 리스트를 받고 진료 후 처방이 나면 그 약이 어느 약국에 있는지를 찾고 해당 약국에 전화를 걸어 확인한 다음, 모든 환자에게 약도까지 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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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 분이 그게 ‘불법’이라고 말하니, 그는 합법이든 불법이든 환자가 막막해 하고 또 여기저기 헛걸음할 것을 뻔히 알면서 어떻게 도와주지 않을 수 있냐면서, “잡혀가도 할 수 없지요. 내가 해야 할 일은 해야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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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이라도 이를 해야겠다는 결정은 그 의사의 윤리적 결정이다. 이같은 결정은 어느 법이나 원칙에서 정해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양심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결정은 의사가 자신의 전문가로서의 긍지에서 자율적으로 내리는 것이고, 자기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전문의가 되고 환자진료를 하면서 한결같이 지키는 개인적인 윤리의식의 반영이다. 그리고 모든 의사가 이와 같은 직업적인 긍지와 전문가로서의 의사의식이 있으며, 양심에 의해 상황마다 옳다고 생각하는 윤리적 결정을 내리고 있다. 그리고 의사에게는 전문직의 윤리의식이 있다는 사실을 믿고 환자는 의사에게 자신의 몸과 생명을 맡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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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의 윤리성에 대한 예민성에 개인차는 있겠지만 그들의 직업 안에서 지켜지는 어느 정도의 양심적 윤리 기준과 원칙이 있다. 이 윤리 의식은 귀중한 것으로 모든 선진 사회에서 인정되고 존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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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변호사, 의사, 목사 같은 전문 직업에서는 자율적으로 자기들이 지켜야 할 윤리적 원칙을 정하고, 변화가 필요하면 그 기준을 수정해 가면서 그 전문직의 윤리성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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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으로 강요할 수 없는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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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전문직에 관한 한 그 윤리성을 자율적으로 직종 안에서 조정하고 지키는 것을 기대한다. 또 의사가 아니면 의사들이 처하는 윤리적 상황을 모르는 것도 있다. 의사가 아니고도 간혹 한가지 윤리적 상황에 관해 이해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의료 현장에
:서 전개되는 상황의 복잡성과 다원적으로 개입되는 다른 윤리상황과의 관계는 경험해 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의 도덕성을 의사 아닌 사람이 전폭적으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의 도덕성을 정부나 정당이나 기타 어느 기관이 법이나 제도로 강요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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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의사의 도덕성을 비판할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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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의사가 명심해야 할 윤리적 원칙을 의사 아닌 사람이 정하는 것도 옳지 않다. 이것은 마치 의학적인 결정(medical decision)을 의사 아닌 사람이 내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의사의 의학적 결정도 그렇고 자율적으로 지켜지는 윤리기준도 그렇고 우리 나라에서는 정부, 정당, 언론, 시민단체들이 정하려 하고 있다. 이것은 의료의 본질은 전혀 모르는 무식의 소산이고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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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의료계가 혼란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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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기술의 발달로 의료윤리가 다루어야 할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요즈음 한창 논의되는 생명과학 윤리도 결국은 의료윤리와 연결된다. 인간의 배아 세포를 이용한 치료기법, 인간복제, 사후 피임약 등이 빈번히 윤리의 문제로 논의되고 있지만 뚜렷한 결론이 내려지지 않는다. 생명공학이나 의료 기술이 발달되는 속도로 생각하면, 앞으로도 새롭게 등장할 다양한 윤리적인 문제를 일일이 사회적 합의를 통해 유용한 윤리적
:기준이나 원칙을 세우는 것은 매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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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유산 같은 문제도 이것이 의사의 윤리적 결정에 맡겨지는 선을 넘어 하나의 법적 제도로 옮겨지면, 그 과정이 더없이 복잡해진다. 미국에서도 인공유산에 관해 법을 제정하려 하지만 해결의 기미가 없는 끝없는 논쟁만 이어질 뿐 합의가 도출되지 못하고 있다. 종교적 신념이 개입되어 있는 이 대립이 합의로 해결되어 법제화되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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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윤리적인 문제는 윤리적인 문제로 의사들 사이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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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그것을 법 정책으로 국가가 규정하려 하니까 엄청난 오류가 생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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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에 대한 과잉진료는 그 수많은 예 중의 하나이다. 외국에서는 감기가 ‘저절로 낫는 병’으로 받아들여지고 의사들도 아무런 약을 쓰지 않지만, 우리 국민들은 감기 증상이 있으면 곧바로 약국이나 의료기관을 찾는다. 그리고는 무슨 약이든 복용하게 된다. 분명히 과잉진료이지만, 이것은 의사들이 부도덕해서 생긴 현상은 아니다. 약을 좋아하고 주사나 항생제를 특히 좋아하는 것은 환자들이기 때문이다. “무슨 의사가 약도 주지 않느냐”는 환자의 불평을 들어보지 않은 의사가 없을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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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의약분업을 통해 이런 현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인데, 국민의 치유신앙이나 의료추구 형태는 법으로 바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의 해결은 환자가 아무리 졸라도 감기에는 합병증이 없는 한 약이 필요 없다고 의사가 약을 처방하지 말아야 오는 것이다. 그리고 의사가 진찰해서 항생제가 필요한지 필요하지 않은지를 결정하는 것은 전문적인 것이기 때문에 처방이나 약을 조제하는데 수가를 정할 것이 아니라 의학적 결정을 하는 데에 수가를 정해야 한다. 의학적 결정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얻기 위해 의사들은 오랫동안 공부하고 경험을 쌓고 투자하기 때문이다. 의학적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의사의 책임과 어려움을 모르고 무조건 법적 규제를 통해 의사의 윤리성을 높이겠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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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 일을 추진하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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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국책에 관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본인이 아니면 이해 할 수 없을 것이다. 환자의 생명을 좌우하는 의사의 결정도 그에 못지 않게 심각하고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의료에 관한 복잡한 전문성을 모르는 사람들이 전문성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에게 ‘수입을 위해 싸운다’고 비난하니,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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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 대통령과 머리 좋기로 유명한 그의 부인도 의료개혁을 하겠다고 나섰었다. 그러나 그들은 의료 분야는 정부가 제도로 개혁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음을 고백하고 그 작업을 철회했다. 현명할 뿐만 아니라 용기 있는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무작정 밀어붙이지 않았기에 큰 실수를 면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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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 정부는 여전히 불가능한 일을 가능한 것으로 믿고 있는 듯하니, 한심스럽다. 물론 의사들이 신뢰를 받을 수 없게 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의사들이 국민을 실망시킨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료개혁은 의사가 주체적으로 참여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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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인 의료윤리의 중요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의과대학들이 의료윤리를 이미 가르치고 있지만, 그 내용의 상당 부분이 공허한 담론일 뿐이다. 안락사, 뇌사, 인공유산, 인간복제, 장기이식 등의 문제를 중심으로 의료윤리를 가르치고 토의하는 것은 사실상 그리 급한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 의사들이 우선적으로 다루어야 할 윤리문제는 의사로서 양심의 목소리에 따라 행동하는 첫걸음을 실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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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현장에서의 윤리적 문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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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우아하지도 않고 철학적이지도 않은 이야기들이지만, 다음과 같은 여러 경우들은 의사의 윤리의식이 중요하게 나타나는 ‘현장’의 모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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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질병을 찾기 위한 과정에서 의사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검사를 임의로 정하고 이를 시행한다. 두통 환자에게 신경학적 검사를 하고 정상이면 뇌의 CT나 MRI를 시도하는 것을 정당한 절차로 안다. 혹시 폐결핵이 있지 않나 보기 위해 흉부 X-Ray 도 찍는다. 간기능이나 기타 이상이 있을지 모르니까 혈액검사를 지시한다. 의사의 의심을 풀기 위한 수단으로 각종 검사의 필요성이 머리에 떠오른다. 의사가 이 검사들을 거침없이 명령할 때 환자는 이를 진단을 위한 당연한 절차로 알고 따라온다. 물론 필요한 검사는 당연히 해야 하지만, 의사가 임의로 검사를 의뢰하는 이 도전 받지 않는 특권이 악용될 가능성은 없을까? 아니 우리가 혹시 모르는 가운데 악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알면서도’ 필요 없는 검사를 장려하고 있지 않은가?
:둘째, 환자가 어떤 병을 가지고 있는지 확실치 않은 경우가 많다. 의심은 들지만 애매한 것으로 간주하고 약물을 처방한다면 이것이 옳은 일일까? 일단 환자가 병원에 왔고 불편이나 고통을 호소하기 때문에 진단이 확실치 않아도 약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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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약도 소위 산탄식(散彈式) 처방으로 소화제, 아스피린, 이뇨제, 비타민, 신경안정제, 항우울제 등을 합쳐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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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어느 하나가 들어맞기를 기대하고 이런 식으로 처방한다. 이 약을 먹고 감기가 낫고 두통이 없어지고 혈압이 내려가고 맥박이 정상화되는 효과를 처방한 약의 효과로 의사도 믿고 환자도 믿는다. 이런 식의 치료가 과연 옳은 것인지 의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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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치료의 유행이다. 한때 목 속이 아프다는 어린아이가 편도선에 염증이 있으면 무조건 편도선을 수술로 제거할 때가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그 수술을 잘 하지 않는다. 심장수술, 특히 by-pass 수술이 대두되었던 1980년대에는 협심증이나 관상동맥질환에서 이 수술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그 당시 이 수술의 위험도는 꽤 높았었다. 물론 약물의 발달에 의한 것도 있지만 요즈음 이 수술의 빈도는 현저히 줄었다. 이 수술을 하는 경우와 하지 않고 치료받는 경우의 생존율에 별 차이가 없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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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근시를 가진 사람들이 라식 수술을 받는 것이 유행처럼 되어 있고, 종합병원이나 대학의 안과 전문의가 줄을 이어 개원하여 성업을 이루고 있다. 돈을 버는 것은 좋은 일이나 대학의 안과 교수들이 후진양성으로 학생을 가르치는 사명을 쉽게 내버려도 되는 것인지? 더구나 이 수술은 특별한 지식이나 기법이 필요한 수술이라기보다는 기계에 크게 의존하는 수술이다. 이래서 의사는 돈에 집착하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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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의 치료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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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허구의 치료를 권장하고 있는 현실이다. 특히 한국의 의사들은 정맥으로 주입하는 수액제, 비타민을 혼합한 수액제, 소위 영양제라고 하는 알부민 같은 각종 수액제들을 무조건 처방하고 있는데, 이것이 진정 환자에게 필요해서 주는 것일까? 환자가 원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원하게 만드는 것은 의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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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 놓아주고 돈 받는 관행이 이런 수액제가 필요하다는 허구의 믿음을 심어준 것이다. 크고 작은 병·의원에 갔을 때 주렁주렁 수액병을 매달고 있는 환자들을 보면 내가 부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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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주사를 주는 것이 부도덕한 행위라고 말하기도 쉽지 않다. 대학교수라서 ‘현실’을 모르고 말을 함부로 한다는 노여운 비난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사가 이런 허구의 치료를 스스로 시정하지 않으면 누가 하게 되는 것일까? 결국 정부가 한다고 나서지 않았나?
:그리고 정부가 법으로 규정하면 의사들에게는 더욱 불리해지기 마련이다. 항생제 남용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의사들도 항생제 남용에 일조한 것은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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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의사가 제약회사에게 값싸게 이용당하는 측면이다. 의사가 제약회사의 판촉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환자의 입장에 무감각한 의사들이 너무 많다. 환자의 증상을 제거해 주고 병의 원인을 근절해 주는 기가 막히는 좋은 약들도 있지만, 부작용의 해가 큰 약들도 많다. 그런데 의사들은 환자가 겪는 고통에 대해서는 너무 무심하다. 환자가 부작용을 호소하면 그 부작용을 약의 효과를 나타내는 지표로 생각한다. 이것은 정신과 영역에 쓰이는 약에서 더욱 심한데, 정신과 영역에서는 약의 용량을 정할 때 부작용의 출현을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실제로 부작용이 나올 때까지 용량을 올리라는 지시가 관례가 될 정도이다. 이 약을 써보다가 약효가 없으면 다른 약으로 바꾼다는 생각을 하고 약을 선택한다면 결국 의사가 환자를 실험용으로 이용한다는 비난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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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째, 소위 교육 시술이다. 교육병원에서는 전공의들이 여러 가지 시술을 배우기 위해 ‘연습’으로 환자치료에 개입된다. 이것은 후진 의사양성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환자가 마취중에 누가 수술했는지 알 길이 없고 수술실내에는 치료진 이외의 감시가 없지만, 수술의 전부나 일부를 전공의가 했을 때 진료비나 수술비를 마치 교수가 한 것처럼 특진비를 가산하는 것은 분명히 윤리적인 문제가 된다. 수술 스케줄에 한 분의 외과 의사가 동시에 세 사람을 수술하는 것으로 공공연히 기록해 놓고 그 세 환자 모두에게 특진비를 가산하는 것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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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 병원이 청결하고 균이 없다는 착각이 있다. 의사들이 긴 머리카락이 흐트러진 채로 때묻은 가운을 입고 뒤꿈치가 벗겼다 신겼다 하는 샌들을 신고 병원에서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보면 한숨이 저절로 난다. 그들이 신는 슬리퍼는 언제 산 것인지, 하루에 몇 명이 맨발로 신는 것인지 모른다. 의사들은 수술이 끝나면 흔히 휴게실에 나와 담배를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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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근처에 수술방이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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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을 조제할 때 장갑을 끼는데, 하루종일 같은 장갑으로 일한다면 그것은 장갑 없이 자주 손을 씻는 것만도 못하다. 병원에서 일하는 여직원들이 진하게 화장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그리고 제일 심각한 문제는 병원에 여러 가지 종류의 세균이 있고 또 유독한 세균이 병원에 많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병원 감염을 줄이기 위해 우리 나라 병원들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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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입장을 생각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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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째, 병원의 모든 스케줄이 의사 편의 중심으로 짜여져 있다는 사실이다. 아침 7시에 큰 수술을 앞둔 환자가 벌거벗은 채 얇은 가운만 걸치고 수술실의 차디찬 에어컨 바람 속에서 시트 하나 덮고 수술대 위에 누워 있다. 수술이 언제 시작하는지 알 길이 없다. 집도의가 회진을 언제 끝마치느냐가 수술시간을 결정하는 유일한 인자이다. 문제의 핵심은 의사들이 수술대 위에 누워 무영등만 쳐다보며 기다리는 환자의 심정
:을 과연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때의 불안과 회의와 공포는 환자들이 일생을 두고 잊지 못한다. 이것은 여러 환자들의 투병기에서 공통적으로 지적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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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자면 한이 없다. 이 같은 현실들이 의사들의 자신에 관한 윤리성의 잣대가 되어 환자들에게 그대로 보여지고 있는데 이 의사들이 생명윤리를 논하고 의권이나 정의를 위한 투쟁을 한다고 대중 앞에 나타났을 때 의사가 주장하는 내용이 옳은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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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적 부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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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환자들이 대합실에서 오래 기다려 화가 나 있더라도 자신의 차례가 되어 의사선생님 앞에 앉으면 금방 공손한 태도로 바뀐다. 그리고 의사 선생 나이가 몇으로 보이건 선생님이라 부르고 나를 잘 봐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의 지시에 복종한다. 진찰실 문을 나가기 전 공손한 인사도 잊지 않는다. 의사는 거의 매일 이런 대우(?)를 받기 때문에 정말 자신이 존경받고 있는 존재이고 자신의 판단과 처방에 권위가 있어 이 권위에 해당되는 대접을 받고 있다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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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이 부풀어 오른 것이다. 이것은 대단한 착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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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까지는 좋다. 누구나 자기에 대한 착각은 하고 살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심각한 사실은 의사들이 자기 스스로를 속이고 살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의학지식이나 자신의 치유력 그리고 자신의 치료기록에 관한 자기 평가가 과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를 뿐 아니라 자신의 전능성을 믿고 있다. 이와 같은 믿음을 반증하는 증거들이나 비판이 있었을 때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강력하게 정당화나 합리화시키는 방
:어를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어 이 허구의 자기 신념은 자꾸 굳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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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신념을 반증하는 증거를 거부하고 합리화시키기 위해 동원되는 강력한 무의식의 메커니즘을 인지적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고 한다. 일종의 자기기만이다. 의사들 중에는 수필가들이 많은데, 의사 수필가들이 쓴 책을 읽으면서 영웅적 또는 성인적(聖人的) 이미지를 느낄 때가 있다. 완전한 자기 도취로 현실감을 잃은 작품들이다. 이런 수필집을 누가 사서 읽는지 모르겠다. 의사의 자기 성찰적인 내용의 글
:들이 출판되면 얼마나 좋을까?
:요컨대 오늘 이 사회에 비치는 의사상(像)은 우리가 생각하고 바라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 사실을 우리가 잘 모르고 있다. 모르는 이유는 우리의 시야가 좁고 생각하는 범위가 협소하며 배운 것들이 한결같이 생물학적 모델의 질병관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의료윤리는 교과서에서 여러 가지 생명윤리의 문제점들을 배우기 전에 의사 자신의 양심의 소리부터 들을 줄 아는 자기 성찰적 자세를 가르치는 데서 시작되어
:야 한다. 자기성찰은 현대인의 자기 정체성의 가장 특징적인 요소이다. 그리고 이 같은 자기 성찰은 훈련으로, 교육으로 그리고 꾸준한 추구로 달성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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