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경희의대졸업생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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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01-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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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경희대 부속병원에서 전공의를 했고, 서울대에서 fellow를 하고, 경희의료원에서 2년간 있다, 순천향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20회 박성진 입니다...
서울대에서 fellow할때, 그때는 모교에서 교편을 잡고 싶은 마음에 갈 데도 마땅치 않고, 여러가지 생각 끝에 모교로 기어 들어 갔지요. 그리고 잠시는 행복했읍니다. 후배를 아끼시는 선배 선생님들이 계시고, 병아리 같은 후배들과 부딪끼는 것들이 좋았거든요. 그리고 후배 앞에서 강의를 하는 것이 소원이었던 저에게는 그 기회가 주어졌었고...
그러나 그 것 뿐이었읍니다. 이태원 선생님이 말씀하신데로 저는 이면계약이 없는 단순한 머슴이었으니까요. 일은 할 만큼했고, 논문도 쓸만큼 썼읍니다. 저에게 교편을 잡을 기회는 모교에서 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했지요. 오로지 기회의 땅은 이 곳밖에 없을 것이라고. 모교에서 교편을 잡고, 후배를 가르치고, 키우고. 그리고 모교를 발전시켜, 나 자신 역시 빛내고 싶었던 것이 저의 작은 소망이었읍니다.
그러나 이 곳은 더이상 기회의 땅이 아니었읍니다, 적어도 경희대 출신에게는. 과에서 선발되어야하고, SCI가 있어야 하며, TO도 있어야하고, 유학도 다녀와야되고, 병원장에게 잘 보여야하고, 마지막에는 재단의 최후통첩까지 기다려야하는데, 결론은 결국 경희대 출신은 더 이상 교원으로 임용하지 않겠다는 것이 고황재단, 그리고 병원의 고위인사의 정책이라는 것이고, 타 대 출신도 내 맘에 안들면 언제든지 안된다는 것이지요.
어찌되었건 저는 순천향대학 부천병원에 와있읍니다. 조교수 발령이 날 꺼라 했지요. 그러나 저는 지금 전임강사입니다.
여기서도 타 대학 출신을 우대하더라고요. 지난 2월에 새로 병원을 개원하면서, 타대 출신은 왠만하면, 조교수 주고(fellow 2년만해도), 자대 출신은 전강이나, 심지어는 한 달동안은 fellow월급을 주고 한달 뒤에 전강을주는 인사를 했더군요 (경희대에 비하면, 별 차등도 아닌데). 그랬더니, junior, senior가 힘을 모아 재단, 병원장에게 강하게 반발했고, 동문회에서 재단과 병원장님을 만난 후 저는 전강으로 발령이 났지요. 그러나 만족합니다. 제가 경희대에 계속 있었고 병원고위인사의 말대로 유학까지 다녀왔다면, 과연 모교의 교원이 되었을까하는 생각에 지금의 전강발령은 저에게는 일단 기회가 주어진 것이니까요. 그리고, 이 곳 동문회의 역할, 그리고 모교의 일에 발 벗고 나서는 동문들. 그리고 그 것을 받아들이는 병원측이나, 재단의 열린마음에, 이 곳이 살아있는 곳이라는 생각에, 기꺼이 전강발령을 기쁘게 받아들였읍니다. 그리고 행복하구요. 그리고, 저를 이 곳으로 고이 보내주신 은사님께, 더욱 감사드리면서 생활하고 있읍니다.
병원을 옮기고, 바쁘게 지내면서, 타 대학 출신들을 만나고 이야기 하다 보니 보니 이제서야 모교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어갑니다. 나의 모교가 아직도, 서울대, 연대, 카대 이후 네번째 대학이라는 생각이 나를 죄는 착각이었다는 것을 이제서야 느낍니다. 순천향대학은 부천병원 그리고 의대 부천캠퍼스를 출범하면서 10위권 진입을 위해 뛰고 있읍니다. 과연 우리 모교는 아직도 10위권내에 있을까요. 절대 아니더라고요. 밖에서 보는 경희대는 이미 중간 이하의, 아무 것도 없는 일부 신생대학의 바로 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읍니다. 저만 이제서 안 것인가요. 서울대, 연대, 카대, 고대, 한양대, 이대, 중앙대, 아주대, 성균관대, 울산대, 포천중문, 가천길, 경북대, 전남대, 전북대, 부산대, 한림대, 인제대 적어도 이정도 대학보다는 아래이고, 몇 군데 빠진 곳도 있겠지요. 거의 20위권에 간당간당 걸려 있는 우리 모교. 과연 서울에 있다는 것 말고, 장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우리 대학을 졸업생으로서 어떻게 바라봐야하는 것이지요.
졸업생은 현재의 모교의 위치에 맞게 평가받는 다는 것을 당연지사이지요. 우리 동문들은 이제 20위권의 대학을 졸업한 의사들입니다. 동문님들 우리가 이렇게 엉터리였나요. 억울합니다. 학생땐, 현대, 삼성병원으로 스카웃되어 가신 대가의 스승님에게 수학했고, 우수한 교수진, 스승님에게 수련받았읍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그냥 그런 대학을 졸업한 의사일 뿐입니다.
경희대 출신들은 졸업 후 잘되어도 학교를 다시 돌아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의대만의 문제만은 아닐 것입니다. 학생뽑아 가르치고, 졸업시키고, 졸업생을 괄시하는 풍토가 졸업생들을 모교의 주변인으로 만드는 원동력이겠지요.
우리 교수님들 성명서, 정말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복지부동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강력한 재단과 병원고위관계자에 대해 더 이상 모교의 추락을 볼 수 없었기에 내린 중대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것만으로는 힘이 모자라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지요. 이젠 동문회가 입을 열어야 하지 않을까요. 동문회의 소리에 귀를 막고 있는 재단이나, 병원 고위 관리자에게 함성이든 기부를 하든 무언가 액션을 해야되지 않겠읍니까.
병원고위관리자의 말대로 경희대 출신으로의 교원자격을 채우고자 유학중인 선배가 네명 이상 있읍니다. 전문의 취득 후 변변히 재산을 모으지도 못한 동문이 1억원의 적지 않은 돈을 들여 모교의 교원이 되고자 신분보장도 못 받은채, 유학 중입니다. 우리 동문회는 적어도 그들에게는 기회를 주도록 해야 하며, 이 후 후배들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겠읍니까.
서울대를 나오고 연대를 나오면 다 똑똑합니까? 모교에서 밀려나 중소병원에서 수련받은 타대 출신이 객관적인 지표도 채우지 못한 사람들이 경희대의 스탶으로 오고 있읍니다.
물론 타 대 출신에게도 문호를 개방해야 합니다. 제가 서울대에서 fellow할때 느꼈던 점인데, 한 5% 정도는 정말 똑똑하고 성실합니다. 나머지는 그냥 그렇구요. 우리 모교에는 적어도 똑똑한 5%를 받아 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동문보다 나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 이 곳으로 모여듭니다. 경희대는 투자도 없고, reserch도 제한적이며, 타 대학보다 많던 보수도 상대적으로 적어졌으니, 우수 인력이 올 리 만무합니다. 저의 선배, 후배 중에도 똑똑하고, 이 사람이면, 우리 모교의 위상을 높일 만한 자질이 있구나 하는 사람들 많지는 않더라도, 800병상 병원 스탶을 채울 만큼은 있읍니다. 이 분들에게 기회를 주고, 재단의 투자를 얻어내어 모교의 위상을 다시 한번 일으켜 세워야하지 않겠읍니까..
두서없이 썼읍니다. 그냥 안타까와서.
바깥에서 보는 경희대는 이미 죽어 얼어버린 맘모스일 뿐입니다. 화려했던 시대를 늘 그리워하지만, 다시는 혼자서는 살아갈수 없는 사람의 노예가 되어버린 자손 코끼리의 숫자만을 늘려가는 죽은 맘모스...
저는 경희의대를 누구보다 사랑했고, 학교가 어떠한 위치에 있더라도 제가 어떠한 자리에 있더라도 사랑할 것입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