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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친구의 글 - 파업과 관련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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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본과생
  • 작성일 : 2002-09-21
  • 조회 : 44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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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 해보셨습니까


2000년 의사들의 파업을 두고서 어떤 선배는 성전(聖戰)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신성한 환자의 생명을 제대로 지키기 위해 의사들은 환자 곁을 떠나는 아픔도 감수해야 한다고, 학생들은 유급을 각오하고 투쟁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여러분이 처방한 약이 효과가 다른 카피약으로 대체조제 되었을 때, 그 환자의 생명은 누가 책임지겠습니까? 지금의 고통은 우리나라 의료를 바로 세우기 위한 시작입니다.’ 의대강당에 모여있던 선한 눈동자의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유급불사를 외치며 투쟁이 거세질수록 의약분업 비대위 말단에서 일하던 한 예과생을 괴롭히던 질문이 있었다. ‘지난 수십년간 대체조제보다 몇 배는 위험한 임의조제가 행해졌다. 그것을 방기해온 책임을 의사들이 면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이번 파업이 밥 그릇 싸움이 아니라 국민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을 과연 우리가 국민들에게 말할 자격이 있는가.’ 비대위 위원장이던 한 선배는 강단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모두가 바뀌어야 합니다. 이번 투쟁이 2000년 한 때에 그치는 행동이라면, 우리는 국민들 앞에 떳떳할 수 없습니다. 유급불사 투쟁은 사회적인 문제에 무관심했던, 의료를 돈벌이로 생각하던 기존의 모습에서 국민과 함께하는 의료를 고민하는 변화의 첫 걸음이 되어야 합니다.’ 혼란스러웠지만, 고개를 끄덕거렸다.


시간은 흘렀고, 투쟁은 끝났다. 병원과 학교로 사람들은 돌아갔고, 여러 단체들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2년이 흘렀다. 답답했다. 그리고 서서히 답답함은 분노로 바뀌었다. 환자를 위해, 의권을 수호하기 위해 유급과 파업을 불사했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다국적 제약회사인 노바티스사가 글리벡을 GDP 규모가 우리나라의 3-4배가 되는 영국,미국보다 비싼 가격으로 팔겠다고 버틸 때, 특효약이지만 비싸서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처방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해서는 아무런 발언도 하지 않았다. 백혈병 환자들만이 ‘돈 없어서 죽나, 투쟁하다 죽나 어차피 죽는다’며 거리로 나왔다. 환자를 실제로 보지도 않고서, 하루에도 수백건씩 문서만으로 의사들이 산재환자들의 요양여부를 판단하는 자문의 제도에 대해서도 아무런 문제제기가 없었다. 극단적인 의권침해에 해당하는 제도에 사람들이 침묵하는 동안, 작년 한 해에만 산업재해로 치료받던 환자 12명이 자살을 선택했다.


병원에서 만나는 인턴,레지던트들은 바쁘다. 그리고 의대생도 바쁘다. 몰라서였을 것이다. 알았더라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적당한 방식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의약분업을 빌미삼아 그들에게만 특출난 정의감을 요구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번에는 병원에서 사건이 터졌다. 의사들이 최초로 파업을 했던 바로 그 공간이었다. 전 세계가 1년 전 쌍둥이 빌딩이 무너져야했던 이유에 고민하던, 지난 9월 11일 새벽 112일간 파업 투쟁을 하던 경희의료원과 카톨릭중앙의료원에 전투경찰 22개 중대가 투입됐다. 끌려가지 않으려 성당으로 들어가 십자가를 붙잡고 버티던 노동자의 몸에 피멍이 들었다. 460여명이 연행됐다.


병원에는 여타 공장과 달리 노사협상에서 직권중재조항이란 게 있다. ‘환자의 생명을 볼모로 한 파업’은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체행동권이 없는 병원노동자들은 항상 ‘불법파업’을 한다. 공권력이 언제 투입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사용자는 협상의 시작에서부터 우위를 점한다. 파업이 80일을 향해갈 때, 경희의료원은 노동부 관계자까지 나서 ‘이 정도 안이면 합의거부할 이유가 없다’며 중재에 나선 안을 거절했다. 8월 중순 핵심쟁점에 대해 급속한 의견 접근이 있었지만, 병원측에서는 ‘구두약속’을 고집했다. 하다못해 녹취록이라도 남기자는 노조의 의견은 묵살되었다. 무노동무임금과 징계 일부 수용의사를 밝히며 협상에 임했던 노조에게 남은 길은 장기파업뿐이었다.


의사들은 ‘불법파업’ 중인 병원 노동자들에게 가혹했고 의대생은 무심했다. 가톨릭중앙의료원에서는 지난 6월 18일 여의도성모병원 여성 조합원이 산부인과 진료를 받으러 가자 ‘파업 중인 사람은 진료해 줄 수 없다’고 거절당했다. 9월 12일 경희의료원 앞 항의 집회 때, 경찰 너머에서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은 정문을 지키고 있었다. 그 건물은 2년전 자신들이 ‘불법파업’을 했던 그 곳이다. ‘의료개혁을 위한 의로운 대정부 투쟁이기 때문에 무노동 무임금이나 징계는 안된다’고 주장하던 바로 그 곳이다.


고통이 가진 유일한 긍정성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타인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일 것이다. 2년전 온 국민에게 상처를 주면서, 우리가 겪어야 했던 아픔의 정체가 과연 무엇이었는지 모두에게 묻고 싶다. ‘정말로 아파했습니까. 지금도 아프나요. 그 아픔은 무엇인가요. 정말로, 투쟁... 해보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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