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말 (한국일보 블로그)
페이지 정보
- 작성자 : gksrnr
- 작성일 : 2004-03-18
- 조회 : 731회
관련링크
본문
대통령의 말
2004-03-18 오전 11:26:26
예전에 노태우 전 대통령이 감옥에 갈 때 얘기다. 당시 텔레비젼에서는 비리혐의로 수사를 받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감옥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 장면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침통한 표정의 노태우 전 대통령이 차에 타자 곁에 있던 아들이 고개를 숙여 아버지가 가는 길을 배웅한다.
순간 나는 쌤통이다라고 소리쳤다. 온갖 비리를 다 저지르더니 결국 죄값을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소리치는 것을 본 아버지 갑자기 화를 내신다. 뭐하는 짓이야, 이 자식아. 나는 아버지가 왜 화를 내시는지 알 수 없었다. 평소 진보적이라고 하실 수는 없지만 전두환이나 노태우 군사정권에 대해서는 반대감정이 많은 분이셨기 때문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나는 아버지가 그 때 왜 화를 내셨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얼마전 대통령의 탄핵사태를 앞두고 벌어진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라디오로 들으면서 그 때 아버지의 심정이 어렴풋이나마 짐작이 갔다. 오해를 없애기 위해 내 입장을 먼저 밝히겠다. 나는 스스로 진보주의자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한나라당에 대해서는 노골적인 반감을 숨기지 않는 사람이다.
그날 대통령의 발언은 내 관점에서는 자기변명적이며 남을 배려하지 않는 연설이었다. 특히 수사가 진행중인 상황에서 특정인을 지명하며 그 사람을 조롱할 때는(좋은 대학 나온 분이 자기 형같은 사람에게 굽신거리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다)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말때문이었는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그 사람은 한강에 몸을 던졌다.
지금까지 대통령이 탄핵에 처한 경우는 전 세계를 통틀어도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그중에 우리의 기억에 가장 강하게 남아 있는 경우는 미국의 닉슨 전 대통령이다. 물론 닉슨 전 대통령은 탄핵국면에서 스스로 물러난 사람이지만 말이다. 그 계기는 상대당 후보에 대한 도청의혹때문이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닉슨 전 대통령이 사임을 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그가 구사한 말때문이었다. 즉 도청 테잎에 담겨진 거칠고 우악스러운 대통령의 말이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닉슨 전 대통령은 나쁜 평판에 비해서는 많은 일을 한 사람이다. 중국과의 국교정상화 노력이라든가, 달러의 기준가치화를 포기하여 세계경제를 더욱 개방시킴으로써 많은 나라들이 혜택을 입었다. 특히 우리나라는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그러나 그 모든 업적은 대통령의 말때문에 허물어지고 말았다.
문제는 닉슨 스스로는 평소 자신의 말을 둘러싼 논란을 우습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즉 자신의 적들이 만들어내는 헛소문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자신은 민중의 언어를 쓰고 있으며, 이것이야말로 미국의 일반국민을 대변하고 있다고 자신만만해했다. 마치 오늘날의 노무현 대통령을 보는 것 같다. 대통령은 그날 회견에서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기 때문에 사과할 수없다고 말했다. 맞는 말일수도 있다. 그러나 그 회견은 대통령의 적이라 할 수있는 한나라당과 민주당, 그리고 일부 국민만을 상대로 한 것이 아니었다. 전국민을 상대로 한 것이다. 그런 회견에서 마치 적을 마주한 장군같이 화를 내는 모습은 상식밖이었다. 그러고 보니 닉슨도 그랬다.
지금 나는 아버지가 왜 화를 내셨는지 알것 같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감옥에 가는 것이 안타까워서가 아닐 것이다. 전 대통령이 감옥에 가는 역사가 계속되는 것이 슬퍼서는 더더욱 아니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딱 하나. 이유야 어쨌건 아버지가 감옥에 가는 것을 마음아파하는 아들이 고개를 숙여 예를 표시하는 장면에 환호하는 내가 꼴도 보기 싫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직설화법이 마음에 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 내 주변에도 그런 사람이 많다. 자칭 엔터테이너로 자칭하는 한 철학자도 방송에 나와 거친 말을 마치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쓴다. 그러나 이들은 최소한 공인이다. 공인의 말은 자기 개인의 말이기에 앞서 사회적인 발언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그 말이 파장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아무리 옳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 말을 하는데는 최소한의 예의가 필요하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그런 예의를 갖추기를 바란다. 만약 살아온 세월때문에 바꿀 수 없다면 배워서라도 바꾸기를 바란다. 노무현 대통령은 개인이기에 앞서 한 국가를 대표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말로 흥한 자 말로 망한다. 이 말을 잊지 마시기를.
2004-03-18 오전 11:26:26
예전에 노태우 전 대통령이 감옥에 갈 때 얘기다. 당시 텔레비젼에서는 비리혐의로 수사를 받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감옥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 장면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침통한 표정의 노태우 전 대통령이 차에 타자 곁에 있던 아들이 고개를 숙여 아버지가 가는 길을 배웅한다.
순간 나는 쌤통이다라고 소리쳤다. 온갖 비리를 다 저지르더니 결국 죄값을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소리치는 것을 본 아버지 갑자기 화를 내신다. 뭐하는 짓이야, 이 자식아. 나는 아버지가 왜 화를 내시는지 알 수 없었다. 평소 진보적이라고 하실 수는 없지만 전두환이나 노태우 군사정권에 대해서는 반대감정이 많은 분이셨기 때문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나는 아버지가 그 때 왜 화를 내셨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얼마전 대통령의 탄핵사태를 앞두고 벌어진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라디오로 들으면서 그 때 아버지의 심정이 어렴풋이나마 짐작이 갔다. 오해를 없애기 위해 내 입장을 먼저 밝히겠다. 나는 스스로 진보주의자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한나라당에 대해서는 노골적인 반감을 숨기지 않는 사람이다.
그날 대통령의 발언은 내 관점에서는 자기변명적이며 남을 배려하지 않는 연설이었다. 특히 수사가 진행중인 상황에서 특정인을 지명하며 그 사람을 조롱할 때는(좋은 대학 나온 분이 자기 형같은 사람에게 굽신거리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다)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말때문이었는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그 사람은 한강에 몸을 던졌다.
지금까지 대통령이 탄핵에 처한 경우는 전 세계를 통틀어도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그중에 우리의 기억에 가장 강하게 남아 있는 경우는 미국의 닉슨 전 대통령이다. 물론 닉슨 전 대통령은 탄핵국면에서 스스로 물러난 사람이지만 말이다. 그 계기는 상대당 후보에 대한 도청의혹때문이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닉슨 전 대통령이 사임을 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그가 구사한 말때문이었다. 즉 도청 테잎에 담겨진 거칠고 우악스러운 대통령의 말이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닉슨 전 대통령은 나쁜 평판에 비해서는 많은 일을 한 사람이다. 중국과의 국교정상화 노력이라든가, 달러의 기준가치화를 포기하여 세계경제를 더욱 개방시킴으로써 많은 나라들이 혜택을 입었다. 특히 우리나라는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그러나 그 모든 업적은 대통령의 말때문에 허물어지고 말았다.
문제는 닉슨 스스로는 평소 자신의 말을 둘러싼 논란을 우습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즉 자신의 적들이 만들어내는 헛소문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자신은 민중의 언어를 쓰고 있으며, 이것이야말로 미국의 일반국민을 대변하고 있다고 자신만만해했다. 마치 오늘날의 노무현 대통령을 보는 것 같다. 대통령은 그날 회견에서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기 때문에 사과할 수없다고 말했다. 맞는 말일수도 있다. 그러나 그 회견은 대통령의 적이라 할 수있는 한나라당과 민주당, 그리고 일부 국민만을 상대로 한 것이 아니었다. 전국민을 상대로 한 것이다. 그런 회견에서 마치 적을 마주한 장군같이 화를 내는 모습은 상식밖이었다. 그러고 보니 닉슨도 그랬다.
지금 나는 아버지가 왜 화를 내셨는지 알것 같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감옥에 가는 것이 안타까워서가 아닐 것이다. 전 대통령이 감옥에 가는 역사가 계속되는 것이 슬퍼서는 더더욱 아니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딱 하나. 이유야 어쨌건 아버지가 감옥에 가는 것을 마음아파하는 아들이 고개를 숙여 예를 표시하는 장면에 환호하는 내가 꼴도 보기 싫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직설화법이 마음에 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 내 주변에도 그런 사람이 많다. 자칭 엔터테이너로 자칭하는 한 철학자도 방송에 나와 거친 말을 마치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쓴다. 그러나 이들은 최소한 공인이다. 공인의 말은 자기 개인의 말이기에 앞서 사회적인 발언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그 말이 파장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아무리 옳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 말을 하는데는 최소한의 예의가 필요하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그런 예의를 갖추기를 바란다. 만약 살아온 세월때문에 바꿀 수 없다면 배워서라도 바꾸기를 바란다. 노무현 대통령은 개인이기에 앞서 한 국가를 대표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말로 흥한 자 말로 망한다. 이 말을 잊지 마시기를.